기계식 키보드 이용기

감상 2010.11.27 22:32
 내가 자주 플레이하던 게임 중 하나로는 음악 게임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한 게임은 비트매니아 IIDX이지투디제이BMS 플레이어 등 유사 키보드를 이용하여 플레이하는 게임들이다. 이 중 앞의 두 개는 전용 컨트롤러가 있거나 아케이드 센터에 가야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지만, 마지막 BMS 플레이어는 PC에서 키보드를 이용하여 플레이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키보드가 중요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존하는 키보드 중 상당히 많은 숫자가 이런 음악 게임 플레이에 적합하지 않다. 키보드는 대중적인 입력 장치로써 그 제조 단가를 낮추기 위해 회로를 최대한 단순화시킬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 보통 키마다 하나씩 선을 배치하는 방법 대신 소수 선의 조합으로 모든 키를 커버하는 방법을 택한다. [각주:1] 이 구조는 제조 단가를 낮추는 데에는 좋지만 동시 입력이 가능한 키조합을 제한하는 문제가 있다. 이는 음악 게임에는 무척 치명적이며, 비단 음악 게임이 아니라도 컨트롤이 중요한 게임들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고맙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 조금 더 얹어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키보드 세상에는 N-key 롤오버라는 개념이 있는데, 여기에서 n은 동시 입력 가능한 키의 개수를 의미한다. 여기에 구체적인 수치 대신 그냥 n-key라고 하면 모든 키를 동시에 누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인 키보드들은 3~7개를 동시에 입력할 수 있으며, 그 이상을 누르면 이른바 키충돌이 난다. 내가 처음으로 음악 게임을 접할 때 사용했던 키보드는 주요 키가 5개까지 동시에 눌려서 이러한 고민을 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얼마전까지 사용하던 키보드는 3키도 제대로 안 눌리던 녀석이라 나로 하여금 n-key 롤 오버 키보드를 구입하게 만들었다. -_-

 서론이 길었다. 어쨌든 n-key 롤오버를 구입하기로 하고 관련 정보를 좀 찾아봤다. 처음에는 딱히 상쾌한 타건감을 원하던 것은 아니라 굳이 기계식 키보드를 원한 것은 아니었고 저가의 멤브레인 키보드라도 괜찮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멤브레인 n-key 롤오버 키보드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쥐꼬리만한 월급을 짜내어 30만원짜리 리얼 포스 키보드를 살 수도 없는 노릇... orz

 그래서 열심히 뒤져본 결과 그나마 타협이 가능한 선인 10만원 미만의 키보드를 찾을 수 있었다. SB74 Orange edition이라는 물건인데, 여기에도 넌클릭/리니어/클릭 세 종류가 있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좀 찾아보니 기계식 키보드에서 입력에 사용되는 스위치의 종류로, 그 특성은 대강 아래와 같다.

  • 클릭 - 일반적으로 기계식 키보드라고 하면 떠올리는 무지막지한 소음의 이미지를 만든 장본인이다. 키를 누를 때 신호가 가기 직전의 깊이에서 내부에서 생기는 충돌로 인해 소음이 나며, 그 시점에 키 압력이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에 키의 입력 여부를 손 끝만으로 알 수 있다.
  • 넌클릭 - 클릭과 유사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만 키감을 희생하는 대신 소음을 약간 줄인 버젼이라고 할 수 있다. 약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_-
  • 리니어 - 위의 두 스위치와는 다르게 키의 압력이 깊이에 대해 선형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손 끝의 압력만을 가지고는 입력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한다. 나는 한번도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은 없다.

 어쨌든 나는 넌클릭으로 구입을 했고, 이번 주 초에 도착하여 대략 1주일 정도 사용해볼 수 있었다.

 우선 게임에는 이 이상이 필요한가 의문이 들 정도로 훌륭하다. 키 충돌이 완전하게 사라졌기 때문에 음악 게임 등에는 아주 우수한 성능을 보여주며, 키 충돌이 없는 게임이라고 하여도 키감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훨씬 더 쾌적하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곧 복귀하게 될 와우에서는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지 무척 궁금하다.

 타이핑할 때 느끼는 키감도 이 정도면 괜찮다는 느낌이다. 예전에 잠깐 접했던 리얼포스나 해피 해킹 키보드(기계식은 아니라고 하지만)에 비할 바는 못 되는 것 같지만, 그래도 타이핑 자체가 훨씬 가볍고 경쾌해졌다. 손가락에 느껴지는 키의 무게감도 훨씬 적어서 피로도 역시 덜하다. 다만 내 타이핑 습관의 문제인지 키보드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왼손 약지의 손가락 마디에 약간의 통증이 있었다. 오른쪽은 별 문제가 없는 것을 봐서는 왼손 약지에 지나치게 부하를 주는 내 타이핑 습관의 문제일지도.

 일주일 써보고 이런 소리를 하기는 뭐하지만 키보드를 이용해서 먹고 사는 직업, 이를테면 나 같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라면 한 번 투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따지고 보자면 N-key 롤오버 키보드를 사려다가 어쩔 수 없이 기계식 키보드를 산 것이기는 하지만, 만족도 자체는 오히려 기계식 키보드의 특성에서 더 많이 느꼈다. 결과적으로는 올해 있었던 지출 중에서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었음.

  1.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www.kbdmania.net/xe/?mid=best_article&document_srl=9783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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