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8집을 돌이켜보며

감상 2010.12.02 23:58
 서태지가 8집 첫 싱글인 모아이를 내놓은지 벌써 2년, 정규 앨범부터 쳐도 1년을 훌쩍 넘었다. 이런 시점에서 왠 뒷북인가 싶기도 하지만, 꽤 오랜 기간 팬질을 해 온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약간 다르다. 내 머릿 속에서 이 앨범의 감상이 단순히 휘발적인 단상들의 파편에 머물고 있는 것이 쉽게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마침 블로그도 새로 열었고 해서 이 앨범에 대한 감상을 한번 정돈된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일단 서빠의 입장에서 전혀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휘갈겼던 단상들을 취합하고 추가하고 정리하는 것이라 읽는 사람들을 그닥 배려하는 스타일의 글은 아니다. 근 2년에 걸친 단상들이 취합되어서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고. 게다가 순간 순간 느꼈었던 정제되지 않은 감상, 사고들을 그대로 옮긴 편이라서 읽기 불편할거다. 게다가 다 쓰고 보니 무지하게 길기까지 하다. 하지만 어떠랴. 이건 엄연히 서빠가 자기 블로그에서 서빠질하려고 쓰는 글이지, 남들 읽으라고 쓰는 글은 아니니까. 여튼 이런 류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읽지 않기를 권한다.
 
이 글을 누군가가 퍼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 퍼갈 사람이 있을지도 의문이긴 하지만 - 일전에 익명으로 서빠 블로깅하면서 놀 때 누군가가 내 글을 가져가서 자신의 엉뚱한 논리를 방어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난감했던 적이 있어서다. 정작 난 그 의견에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 네이쳐 파운드 Nature pound

 서태지가 첫 싱글을 들고 나왔을 때 8집을 표현하는 단어로 네이쳐 파운드라는 단어를 꺼내 들었다. 물론 이런 장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장르라기 보다는 형용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한 잘나신 평론가들께서는 "가져올 장르가 떨어지니 이젠 새로 만드냐며" 신나게 비웃었지만, 정작 네이쳐 파운드라는 근본 없는 단어보다 이 음악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아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 평론가는 시부야케이 드립까지 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헛 웃음만 나올 따름이다. 모던락이라는 소리를 했던 사람도 있었는데 이 경우는 이빈후과에 가보는게 차후의 리뷰 인생을 위해서 좋았을 것이다.

 이야기가 산으로 갔는데, 정규 앨범에 라이브 앨범까지 모두 나온 지금 사후 해석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네이쳐 파운드라는 단어는 이 앨범을 설명하는 데 있어 꽤 괜찮은 단어 선정이다. 이 앨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를 들다면 록 밴드의 편성으로 마치 일렉스러운 텍스쳐를 구현해낸 것에 있다. 여기에서 네이쳐는 아날로그고, 파운드는 일렉인 셈이다. 게다가 음악적 형용의 대상이 자연 그 자체이니 중의적인 의미까지 가진다. 혹자는 IDM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는데, 이 음악이 그 자체로 IDM인 것은 아니지만 그 성질은 무척 흡사하다. 이걸 위해 한 달 동안 세션을 가둬두고 살인적인 수준의 고스트 스네어를 소화해내게 했던 것이고 - 프로그래밍한게 아니라 실제 사람이 연주한거다! - 1년 가까운 기간을 녹음에 투자한 것이다. 작업 과정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무지막지한 시행착오 끝에야 이런 소리를 얻어낸 것일터다. 모 평론가는 이걸 보고 예술가라기보다는 장인이라는 개드립을 쳤는데, 애초에 음향에 신경쓰지 않는 음악가에겐 예술가로써의 자격이 없다. 궁극적으로 좋은 음악이란 좋은 소리거든. 로파이로도 좋은 음악이 나오는 것은 그 사운드에서도 미적인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온 뮤지션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지, 그걸 구린 소리에 대한 변명으로 쓰라고 내놓은게 아니라는 거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국 평론가들 좀 씹어보자. 한국 평론가들에게 있어서 서태지란 모종의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사기성 짙은 키치 이상으로 평가되선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사연을 이야기하자면 꽤 길다.) 서태지가 무슨 음악을 하건 어떤 결과물이 나오건 그런 건 상관 없다. 평단과 서태지 사이에는 이미 어떠한 프레임워크가 다 잡혀 있는 상태고, 평론가들은 그에 맞추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서태지에 대해 인상 비판할 뿐이다. 정작 중요한 음악에 대해서는 리뷰할 의지도, 실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무려 리뷰라고 내놓은 글에서 "어찌저찌하여 서태지의 음악은 흥미롭지 않으니 음악보다는 서태지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같은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하며 독심술을 펼칠 수 있는 것일게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서태지는 이러한 개드립들에 쉽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마이 페이스라는 것이다.  남이야 뭐라 하든 마이 웨이.


- 모아이 Moai



혼자 오지 같은 곳을 찾아가면서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기분,
가슴 찡한 기분을 음악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 앨범에서 사운드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곡이 바로 모아이다. 폐쇄된 동굴에서 3차원적으로 울려 퍼지는 물방울 소리로 시작하여 탁 트인 야외의 물방울 소리로 끝나는 수미쌍관의 구조부터가 이를 말해준다. 이건 단순히 사운드 소스의 탁월함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전자 드럼으로 시작되는 IDM 사운드가 자연스럽게 아날로그 드럼으로 넘어가는, 마치 마법과도 같은 전이에서 전혀 다른 성질의 두 사운드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는 것, 그게 핵심이다. 오랜 기간 동안 록과 일렉트로니카를 융합하려는 시도는 참으로 많았지만 내 식견이 좁아서인지 이런 성격의 화학적인 융합을 시도한 경우는 알지 못한다. 기껏해봐야 그 둘을 물리적으로 이어 붙인게 대다수에 포스트 뭐시기하는 음악들에서 그나마 좀 화학적 융합이 된 경우에서도 서태지 같은 방식은 못 들어봤다. 그런데 그걸 실험적인 음악에서 구현해보는 수준이 아니라, 팝이라는 틀 안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는 점이 놀라운거다. 어쨌건 음악 좀 들었다 하는 평론가 양반들에게 록 음악을 들려주고서 시부야케이라는 이야기까지 끌어내지 않았던가.

 음악의 텍스쳐는 언제나처럼 촘촘하고, 사운드는 전례 없이 다양하고. IDM 비트로 시작하여 사운드를 하나하나 쌓아 나가는 도입부는 공간감을 배제하여 폐쇄적인 공간, 이를테면 동굴을 미친듯이 질주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또 이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설명한다. 그 끝에 기다리는 넓직한 공간감을 가진 아날로그 사운드로의 전환에서는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진다. 그와 더불어 청자를 기다리는 낯선 멜로디, 낯선 리듬의 벌스는 자의식 강한 베이스, 잘게 쪼개진 비트, 희미하게 울려 퍼지는 키보드와 함께 촘촘하게 짜여 익숙하지 않은, 마치 슬라이드 쇼와 같이 흘러가는 이국적인 이미지를 선사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그 모든 사운드가 한 발짝 물러서서 두 개의 익숙한 멜로디를 이어 붙인 듯한 코러스를 서포트하기 시작하며 이러한 낯섬도 익숙한 감정으로 치환된다. 새로운 세상을 만나며 느끼는 두근거림, 감동. 아마 서태지 본인도 그 심장 박동을 위해서 비트를 잘게 쪼갰다고 했었을거다.

 모아이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징후로는 서태지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소재들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비롯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례로 익숙치 않지만 어색하지도 않은 벌스 멜로디의 리듬은 7집부터 보이기 시작하던, 리듬을 파괴하는 비정형적 멜로디를 잇는다. 그래서 벌스의 진폭은 크고 진행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색하지 않고 팝스럽다. 7집에서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드러났던 청각적인 사운드와 시각적인 가사를 동기하려는 시도는 훨씬 세련되게 와닿는다. 소리를 잘게 쪼개어 만들어 낸 순간 순간의 이미지 위에서 "이 낯선 길 위로 조각난 풍경들 이런 내 맘을 담아서 네게 주고 싶은 걸"이라고 노래한다니 이건 완전 크리티컬하잖아. 이스터섬에서 찍었다는 뮤직 비디오는 이러한 의도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록 음악의 사운드/편성으로 일렉트로니카의 텍스쳐를 가지는, 하지만 팝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서태지가 대중 음악 씬에서 15년 간 록과 일렉트로니카 양 쪽 모두를 꾸준히 파 온, 하지만 그 모든 장르들의 공식에 함몰되지는 않은 그런 뮤지션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거다. 이건 예술적인 상상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음향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 그렇다. 서태지가 시도해 온 장르는 많았지만 언제나 자기 음악 위에서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장르를 가져 왔을 뿐, 장르 논리 그 자체에 파묻힌 적은 없었다. 그래왔기에 이제는 핌프락, 이모코어 같은 외부의 용어가 아닌, 네이쳐 파운드라는 자기만의 용어로 음악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일거다. 이전까지의 해온 모든 음악에 대해 공부하는, 수입해오는 입장만을 고수해왔었던 서태지가 이제서야 자기 세계를 표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확실한 진보다.



 모아이도 괜찮지만 휴먼 드림도 좋다. 가볍고 발랄한 칩튠 사운드와 서태지의 미성이 곡를 리드할 때 지저분한 톤의 기타와 묵직한 베이스가 균형을 조율하며 미적인 조화를 이룬다. 일견 제 정신이 아닌 듯한 ; 서태지의 전매 특허인 자동 기술적인 가사는 사람의 감정을 가지게 된 로봇이라는 컨셉과 만나면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제킬 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케하는 동요적인 멜로디는 자전적인 성격의 씁쓸한 가사와 만나며 아련함을, 하지만 "난 더 이상은 못 불러 똑같은 노래를 똑같은 표정으로"라는 의지의 표현에서는 서태지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음악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느끼게 한다. 로봇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7집 로보트와 8집 휴먼 드림, 그 사이의 변화는 서태지라는 뮤지션의 컨텍스트에 있어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적어도 그 전까지의 불안감, 의구심은 사라지고 일종의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 느껴지니까.


- 버뮤다 트라이앵글 Bermuda triangle



 일전에 봤었던 8집 리뷰 글에서 첫 번째 싱글이 로고스라면 두 번째 싱글은 파토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다.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로 나타났건 간에 첫 번째 싱글의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원동력은 철저하게 논리에 기반하고 있었다. 모아이는 사운드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전자 음악의 논리 위에 17년 간 쌓아온, 자기만의 록/팝 음악 문법을 접목시킴으로써 음악을 완성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 싱글은 좀 다르다. 사운드를 만들어 가는 방법은 어느 정도 전자 음악의 그 것을 차용하고 있지만 그 지향점은 조금 더 록적이다. 악곡에서는 사랑(Juliet), 상실감(Coma), 성과 타락(Bermuda)과 같은 감정을 표출하고자 하는 화자의 욕망이 훨씬 강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차이는 작자로 하여금 로고스보다는 파토스를, 텍스쳐나 사운드보다는 곡 자체를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향하게 만든다. 뭐 그렇다고 해도 이 양반 성격이 어딜 가진 않는다. 충분히 이성적으로 만들어진 곡들이긴 하다는 이야기다. 그 비율의 차이가 있을 뿐.

 이 곡 역시 네이쳐 파운드다. 한 순간 Take 5의 인트로 리프를 연상케 하는 도입부 직후 낮은 톤의 기타와 빠른 비트 위에서 부유하는 듯한 가성의 보컬은 하늘로의 비상을 그려낸다. 기타 텍스쳐가 빠져나간 직후에도 스트레이트한 리듬으로 이어나가던 벌스는 어느 순간엔가 시작된 변칙적인 드럼 패턴과 그와는 따로 노는 베이스와 기타, 그리고 그 위에 하나 둘 쌓여 가는 사운드 레이어들로 점점 복잡해져 간다. 이는 화자의 내면을 반영한 것일테다. 하지만 이런 전개는 악기들의 서로 다른 템포가 하나로 맞추어지는 순간 단칼에 끊기고 곧바로 스트레이트한 코러스로 돌입한다. 여기에서 긴장감이 풀리며 생기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태초의 성이라는 테마와 연결해보자면 이는 아담과 이브의 첫 경험을 은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뱀과 선악과라는 소재를 꺼내든 뮤비도 그렇고. 하지만 성적인 판타지를 노래하는 여타의 곡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청명하고 순수한 느낌.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우아하다. 하늘 위에서 이러한 구조가 두 번 반복되고 시작되는 브릿지에서는 거친 신스 사운드로 몰아 붙이며 하늘 위를 떠다니던 화자를 바다로 떨어뜨린다. 이게 바로 타락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여기에서 서태지는 이 엄숙한 비겁자의 하늘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곡의 구조가 흥미롭다. 한국이고 외국이고 자시고 간에 후크송이 난무하는 요즘 세상에서는 한 곡에서 같은 멜로디가 적어도 4번, 많으면 10번도 넘게 들린다. 심지어는 코러스 한번에 한 멜로디를 5~6번씩 반복하기도 한다. 각인은 빠르지만 소모도 빠르다. 쉽게 질린다. 하지만 이 곡을 비롯한 두 번째 싱글에 수록된 곡들에서 서태지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한다. 일종의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복잡한 코러스를 한 곡에 걸쳐 딱 두 번만 반복한다. 코러스 안에서 반복되는 멜로디도 별로 없다. 거칠게 몰아치는 브릿지가 끝나고 나면 당연히 나와야 할 코러스는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기력을 다 소진했다는 듯한, 힘 빠진 목소리로 곡을 마무리 해버리는거다. 자기 멜로디, 자기 사운드에 대한 자신감이 없으면 절대 취할 수 없었을 선택이다. 한 순간에 소비되기보다는 꾸준함을 원하는 선택. 아주 서태지스럽다.


- 줄리엣 Juliet



너희를 보면 하나도 안 변한 모습이 정말 멋있고...
나도 그래서 하나도 안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서태지 본인의 말에 따르면 정말 오랜만에 사랑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필승을 사랑 노래로 친다면 거의 12년 만에 내놓은 사랑 노래인 셈인데, 그저 순수하다. 전혀 때가 타지 않았다. 사람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어쩜 저리도 안 변할 수가 있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건 37살 먹은 사람이 내놓은 노래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서태지가 그 동안 해온 고민, 노력이 고스란히 담긴 위의 말을 보면 그게 가능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서태지가 15년 동안 해온 음악에서 핵심 테마 중 하나가 바로 순수함에 대한 강박이었으니까. 그래서 7집의 제로 같은 곡을 들으면 내내 골방에 틀어 박혀 음악만 해온 사람이 만든 곡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고. 또 그러니까 제로 라이브의 너에게 - 제로로 이어지는 앵콜에서도 두 곡 사이의 10년 간극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거다. 이 곡 역시 그렇다. 불혹을 눈 앞에 두고 있는 뮤지션이 아직도 이렇게 소년적인 감성을 유지하고 있다니. 진심으로 부럽고, 따라가고 싶은 사람이다.

 버뮤다나 코마같이 같은 싱글에 실렸던 곡들 모두가 그렇지만, 특히나 이 곡의 구성은 더 독특하다. 아예 코러스를 두 파트로 분리하고 있다. 7집의 로보트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했었지만, 이렇게 극적이진 않았다. 어찌되건 중심이 되는건 강한 훅의 코러스였고, 인트로/아웃트로는 코러스라고 보긴 애매했으니까. 하지만 이 곡은 인트로부터 Save me now~로 시작하는 코러스로 시작한다. 정작 처음 들을 때는 코러스라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곡의 중심에는 저 하늘로~로 시작하는 메인 코러스가 위치힌다. 첫 네 마디에서는 일시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며 몰아 붙이다 갑자기 곡의 속도가 느려지며 완급을 조절한다. 그 뒤 다시 한번 업비트로 돌아서며 펼쳐지는 네 마디가 바로 이 곡의 진국이다. 내 마음을, 나를 뛰게한 두근거림은- 이런 천진난만한 노래가 순수한 멜로디와 심장 박동과도 같은 리듬 위에서 퍼져 나간다. 그 뒤에 레이어링된 백보컬은 그 찰나를 일종의 환상으로 바꾸어 낸다. 이런 순간을 위해 그리도 사운드에 천착해 온 거라 해도 무리는 아닐거다. 이 마법과도 같은 찰나가 지나면서 화자는 지금 어디에, 너는 어디에 있는거니... 라는 아련한 목소리로 그 순간에 대한 그리움을 말한다. 바로 이게 서태지가 그려내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인거다. 강한 훅은 없지만 예쁜 멜로디에서 욕망보다는 순수한 감정을 느낀다. 순간 순간 급격하게 요동치는 감정을 급격한 변화로 표현해내지만 멜로디와 구성, 사운드 모두가 탁월해 그저 자연스럽다. 이러한 순간들이 지나고 다시 한번 인트로 코러스가 나오는 순간 처음에는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느낌을 받는다. 분명히 똑같은 멜로디, 똑같은 리듬, 똑같은 사운드인데 이번에는 그 답가로 들리지 않는가.

 기술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음악을 만들어 내는 감성이다. 이런 감성을 가지고 이런 음악을 만들어내는 뮤지션은 세계로 범위를 넓혀봐도 드믈다. 적어도 내가 들어본 음악 중에서 이런 감성을 가지고 이런 음악을 만들어낸 경우는 없다. 37살의 실력으로 10대 소년의 감성을 그려낸거니까 당연할지도 모른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하지만 그 과정이 그리 쉬웠을리가 없다. 요즘 시대에 살아 남으려면 주변의 환경과 싸워 나가며 쟁취하거나 자기 자신을 환경에 맞춰가며 많은 것을 타협해야 한다. 당연히 후자가 훨씬 쉽고 편한 길이지만 잃는 것도 많다. 스스로를 환경에 맞춰 나가는데 주변 환경에 먹혀 버리지 않는다면 그건 초인이다. 하지만 서태지는 언제나 전자의 길을 택했고,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18년 간 한결 같은 마인드, 감성으로 음악을 해올 수 있었던 거다.

 이 곡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지만, 안타깝게도 내 수준이 딸려서 이 이상의 표현을 해낼 수 없다.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굳이 한 마디 더 하자면... 서태지가 이런 곡을 만들어 낸 원동력이 사랑이라면 당장이라도 서태지 장가 보내기 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 근데 내가 이런 소리를 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 코마 Coma

 안타깝게도 뮤비가 공개되지 않았다. 대체 왜 공개를 안 하는거야! 당시 숭례문 전소에 대한 상실감을 표현한 곡이다, 뭐 이런 보도 자료가 나왔었는데 내 생각에 이건 아무래도 떡밥이다. 숭례문 전소는 2008년 2월이었고 활동 개시한게 7월이었는데 그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곡을 쓰고 레코딩까지 마쳤다고 보기는 서태지 성격 상 좀 무리니까. 그 바쁜 활동 중에 곡을 썼다고 보기는 무리고. 내 생각엔 그냥 줄리엣이 떠난 뒤의 상실감을 표현한게 아닐까 싶다. 서태지의 줄리엣이 누군지는 모르겠다만. 그러고보니 이 곡이 공개되고 얼마 뒤에 내가 좋아하던 자유주의자 한 분이 세상을 등졌었지. 내색치 않으려고 노력했었지만 이 나라에 처음으로 깊은 절망을 느꼈던 날이었다. 그 때 이 곡에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제로를 처음 들을 때처럼 눈물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코러스를 제외하면 사운드를 만들어 가는 방법은 동 싱글의 여타 곡들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같은 싱글 내의 곡 중에서 가장 첫 번째 싱글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주파수 대역을 잔뜩 잡아먹는 일렉 기타를 조금 뒤로 빼고, 그 대신에 어쿠스틱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 사운드를 조립하기에 조금 더 여유가 있는 느낌이다. 난타하는 비트 이후 스트링이 치고 들어오는 시점, 시간이 분절된 듯 느껴지는 인트로가 인상적이다. 낮은 목소리로 자조하는 듯 부르는 벌스 구간의 가사에서 미약하게나마 공감을 느끼는 건 팬이었던 15년의 세월에 동화가 되어 버린건지, 아니면 그저 내 모습이 투영된 것처럼 느껴서인지.

 코마의 코러스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높게 올려 쌓은 담- 으로 시작하는 앞부분과 향긋했던 약속의-로 시작되는 뒷 부분. 앞 부분에서는 멜로디와 이를 받쳐주는 오르간, 키보드, 기타 등의 다채로운 사운드로 구성된 반주가 서로 호응한다. 여기에 담긴 좌절감, 무력감은 예전에 부른 어느 노래보다 절실하다. 손에 닿을 수도 있었던, 하지만 허무하게 부숴지는 꿈. 그래서 무력감은 더더욱 커져간다. 이 상태에서 뒷 부분의 훅이 치고 들어오는데, 이 때 함께 치고 들어오는 스트링과 백 보컬의 화음으로 만들어지는 텍스쳐는 줄리엣의 코러스와 함께 이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절망에 대해 잠깐의 위안이라도 해주듯이 들려오는 향긋함. 이 순간을 만들어 내려고 얼마나 집중했을지 생각해보면 그저 고마울 따름.

 여타 곡들과 다르게 
 첫 번째 코러스가 끝나는 시점에 바로 브릿지로 들어가는 것도 신기하다. 보통 곡들은 두 번째 코러스가 끝난 뒤 브릿지에 들어가고, 그 뒤에 다시 한번 코러스를 넣은 뒤 곡을 끝낸다. 좋게 보자면 곡이 단순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브릿지라는 이디엄을 쓰는 셈이고, 나쁘게 보자면 코러스 한번 더 우려먹기 위해 쓰는거다. 근데 코마에서는 브릿지를 중심으로 곡이 대칭을 이루는 구조를 가진다. 심지어는 아웃트로 파트에서는 인트로의 기타 리프가 반복되기도 하고. 게다가 브릿지도 굳이 구분을 하자면 그렇다는거지, 두 번째 벌스에 아무 위화감 없이 섞여 드는 것을 보면 그냥 벌스의 일부분처럼 들리기도 한다. 헤피 엔드에서 멜로디의 형식을 파괴했다면 코마에서는 곡의 형식을 파괴한 셈이다. 여기에서 나는 9집을 기대할 원동력을 또 하나 찾아냈고. 모아이의 사운드, 줄리엣의 감성, 코마의 구조. 이런 실험을 끝까지 밀어 붙이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 +_+




 8집 수록곡을 다 다루지 않았는데, 이건 내가 곡을 편애해서라기보다는 - 사실 이 곡들을 제일 많이 듣긴 했었다 - 하고 싶은 말이 가장 많았던 곡들이기 때문이다. 그게 그건가? 이렇게 썰을 풀어 놓은 상태에서 다른 곡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봐야 동어 반복이거나 엉뚱한 삽질 밖에 안 할테니 굳이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맥락이나 의미적인 해석은 나보다 더 잘해놓은 사람들도 많으니 감상만 적으면 충분하다. 하지만 틱탁이나 레플리카 같이 글리치에 서태지식 메탈 사운드를 접붙인 곡도 좋아하고, 아침의 눈 같이 힘 쫙 빼고 마음을 솔직하게 열어준 곡도 좋아한다. 사실 서태지 음반에서 한 곡도 빠짐 없이 모든 곡을 이리 가깝게 느껴본 것도 처음이다. 리믹스 버젼들도 괜찮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그래도 원곡들에 비해서는 덜 좋아한다. 그 동안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못 해본 본격 일렉 뮤직을, 프로그래머도 생긴 김에 이 기회에 한번 해보자, 이런 느낌이었달까. 아니면 말고. 어쨌든 난 이 앨범에서 서태지가 음악적으로 정점을 한번 찍었다고 생각하고. 근데 아직도 더 올라갈 여지가 남아 있다는, 그런 뉘앙스도 느낄 수 있어서 - 여지까지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 더더욱 다음 앨범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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